복숭아는,
기다림의 과일입니다
“덜 익은 걸 따서 후숙하면 편하지요. 그런데 나무에서 끝까지 익은 복숭아 맛을 한번 알면, 그렇게는 못 합니다. 꼭지까지 달아지면 그제야 땁니다.”
경북 청도 만화리 · 복숭아 농부 김순애
청도 읍내에서 운문사 쪽으로 이십 분, 만화리의 아침은 복숭아밭에서 시작됩니다. 김순애 님은 이 골짜기에서 서른 해 넘게 복숭아를 길렀습니다. 아버지가 심은 나무를 물려받아, 이제는 당신 손으로 접붙인 나무가 과수원의 절반을 넘습니다.
새벽 다섯 시 반, 헤드랜턴을 쓰고 밭에 오르는 이유를 물었더니 답은 간단했습니다. "해 뜨고 나면 늦어요."
새벽 여섯 시, 이슬이 마르기 전에
"복숭아는 밤사이에 시원해진 몸으로 따야 합니다. 한낮에 딴 과일은 속에 열을 품고 있어서, 상자 안에서 하루 만에 물러져요. 새벽에 따서 바로 그늘로 옮기면, 같은 복숭아라도 손님 상에 올라갈 때 상태가 다릅니다."
수확은 해가 능선을 넘기 전에 끝냅니다. 그날 딴 복숭아는 그날 오전에 선별대에 오르고, 오후에는 상자에 담겨 밭을 떠납니다. 신선혜자가 '산지 당일 출고'를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이 새벽 두 시간 덕분입니다.
"꼭지까지 달아지면, 그제야 땁니다"
시장에 나가는 복숭아 대부분은 단단할 때 미리 땁니다. 유통되는 동안 익으니까요. 김순애 님은 그 방식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습니다. 기준은 눈이 아니라 꼭지 주변입니다. 봉지를 살짝 열어 꼭지 쪽까지 붉은 기가 돌고 달큰한 향이 올라오면, 그제야 가위를 댑니다.
"복숭아나무는 정직해요. 겨울에 잘 재우고, 여름에 기다려 준 만큼 돌려줍니다. 사람이 서두르면 나무도 서두르는데, 그 맛은 어쩐지 얕아요."
하루 이틀을 더 기다리는 대신, 무른 과일이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는 방식입니다. 그래서 만화리 복숭아는 많이 내지 못합니다. 그해 나무가 허락하는 만큼만 냅니다.
한 알에 들어가는 여덟 번의 손길
겨울 가지치기부터 초여름 봉지 씌우기까지, 복숭아 한 알에는 손이 여덟 번 갑니다. 꽃을 솎고, 어린 열매를 솎고, 알이 굵어지면 한 알 한 알 봉지를 씌웁니다. 벌레와 새를 막는 일이기도 하지만, 껍질이 얇은 복숭아가 서로 부딪혀 멍들지 않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.
"기계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. 복숭아는 사람 과일입니다." 과수원 일지를 보면 따는 날보다 기다리는 날이 훨씬 많습니다. 그 기다림이 이 과일의 값입니다.
받으신 뒤에, 이렇게 드세요
- 도착하면 상자를 열어 바람을 한 번 쐬어 주세요. 눌린 자리가 없는지 이때 봐 두시면 좋습니다.
- 완숙으로 딴 복숭아라 오래 두는 과일이 아닙니다. 이삼일 안에 드실 만큼은 실온에, 나머지는 냉장에 두세요.
- 드시기 삼십 분 전에 냉장고에 넣었다 꺼내면 향과 단맛이 가장 살아납니다. 너무 차가우면 향이 잠깁니다.
말랑한 물복을 좋아하시면 도착 후 하루 이틀 실온에 두시고, 아삭한 쪽이 좋으시면 바로 냉장하세요. 같은 나무에서 온 복숭아라도 드시는 방법에 따라 다른 과일이 됩니다.
여름 한 철, 나무가 허락하는 만큼만 내려오는 과일입니다. 올해 몫이 끝나면 내년 이맘때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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